천경자(1924-2015)는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로, 그녀의 작품은 독특한 채색화와 상징적인 여인 묘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주로 여인과 꽃, 뱀 등을 주제로 하는데 그중에서도 ‘길례언니’ 시리즈는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천경자의 독특한 화풍과 문학적 감수성을 잘 보여줍니다. 예술과 함께하며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도 그녀는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길례언니
천경자의 작품 ‘길례언니’는 1973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천경자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천경자가 어릴 적 축제에서 본 여인의 모습을 모티브로 하여 창작한 캐릭터입니다. '길례언니’는 노란 원피스에 모자를 쓰고 하이힐을 신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며, 천경자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여인입니다. 천경자는 자신의 수필에서 '길례언니’가 실존 인물이 아닌, 상상력을 발휘해 지어낸 가공의 인물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천경자가 '길례언니’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녀가 어릴 적 다니던 소학교(현 초등학교)의 선배였던 여인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학교를 졸업한 후 소록도의 나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마을을 떠났다고 합니다. 천경자는 이 여인을 '길례언니’라고 부르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뾰족구두에 노란 원피스, 챙이 달린 모자를 쓴 길례언니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화사하게 웃으며 하늘을 쳐다봅니다.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순결한 눈망울과 처녀 특유의 뾰로통한 표정은 어린 천경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길례언니’를 주제로 한 작품은 여러 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1973년에 제작된 첫 번째 '길례언니’와 1982년에 제작된 두 번째 '길례언니’가 있습니다. 1973년작 '길례언니’는 종이에 채색된 작품으로, 크기는 33.4 ×29cm입니다. 1982년작 '길례언니’는 크기가 46 ×34cm로, 두 작품 모두 천경자의 독특한 화풍과 상징성을 잘 보여줍니다.
천경자의 작품 세계에서 '길례언니’의 영향은 매우 큽니다. 이 작품은 천경자의 대표작 중 하나로, 문학적 감수성을 잘 보여줍니다. '길례언니’는 천경자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여인이며,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천경자는 길례언니를 그리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현실에서의 고달픔을 정화시켰을 것입니다. 간혹 길례언니가 낯선 남자의 얼굴이 되거나 낯익은 사람의 모습이 되어 비리기도 하지만 상상 속에 존재하는 오히려 더 속속들이 그녀를 알았다면 실망했을지 모르는 길례언니의 표정과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 천경자는 수업이 많은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천경자의 '길례언니’는 대중에게 매우 인기가 많은 작품입니다. 작품 가격은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82년작 '길례언니’는 2017년 경매에서 약 7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천경자의 작품에서 여인들이 모자 위에 또는 머리에 꽃을 달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 그리고 문화적 배경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개인적인 경험: 천경자는 어린 시절부터 꽃을 좋아했고, 꽃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꽃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꽃은 그녀에게 있어 아름다움과 동시에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집안이 부유했던 천경자는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해방된 후에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5년 만에 돌아와 만난 길례언니는 미쳐있었습니다. 길례 언니가 왜 미쳤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소록도로 돈을 벌러 간 언니는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천경자는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는 미친 여인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미쳤다는 의미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이지만 타인을 헤치지 않고 본인이 자신을 억압하고 자책하여 생긴 질환으로 착하고 슬픈 질병입니다.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는 미친 사람들의 모습에서 천경자는 자신의 그림에 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냅니다.
문화적 배경: 한국 전통문화에서 꽃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 혼례에서는 신부가 머리에 꽃을 장식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는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상징하며, 천경자는 이러한 전통적 요소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심리적 표현: 천경자는 꽃을 통해 여인들의 내면세계와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꽃은 사랑, 열망, 상처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여인들의 복잡한 심리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예술적 표현: 천경자는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구성을 통해 여인들의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자 했습니다. 꽃은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한 시각적 요소로 작용하며, 작품의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되어 천경자의 작품에서 꽃이 중요한 상징적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꽃의 상징성: 꽃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일시적이라는 점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합니다. 또한, 꽃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동시에 죽음과 소멸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천경자의 작품에서 꽃은 사랑과 배신, 열망과 상처의 이중적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천경자는 이러한 상징성을 통해 여인들의 내면세계와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꽃을 통해 여인들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천경자의 작품 속 여인들은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구성을 통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는 그녀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잘 보여줍니다.
천경자
천경자(1924-2015)는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로, 그녀의 삶은 예술과 함께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천경자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천옥자이며,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일본 도쿄의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일본화를 전공했습니다. 이 시기에 '경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붙였습니다.
1943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부상>으로 입선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귀국 후에도 여러 전시회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주로 여인과 꽃, 뱀 등을 주제로 하며, 독특한 채색화로 유명합니다.
천경자는 두 번의 결혼을 했습니다. 첫 번째 남편 이철식과의 사이에서 1남1녀를 두었고, 두 번째 남편 김남중과의 사이에서도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의 결혼 모두 순탄치 않았으며, 특히 첫 번째 남편과는 일찍 사별하게 되었습니다.
1969년부터 간헐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며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접했습니다. 여행지에서 고갱이나 메릴린 먼로와 같은 역사적인 예술가의 족적을 밟으며 자신의 예술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천경자는 2015년 91세의 나이로 미국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두 달 동안 알려지지 않아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뉴욕에 있는 큰딸 이혜선 씨의 자택에서 지내며 치매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마치며....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그녀의 예술적 유산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천경자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녀의 삶과 예술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천경자의 예술 세계를 통해 우리는 그녀의 깊은 감정과 생각을 느낄 수 있으며, 그녀의 작품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줍니다. 천경자의 삶과 예술은 우리에게 예술의 힘과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